나묘식기

쥬고 (十五, Juu-go)

나묘위키 2022. 11. 20. 23:20
Soba
Michelin Bib Gourmand 2019
Michelin Green Star 2022
6 71, 浄土寺上南田町 左京区 京都市 京都府 606-8405

 

 

Juu-go – Kyoto - a MICHELIN Guide Restaurant

Juu-go – a Bib Gourmand: good quality, good value cooking restaurant in the 2023 MICHELIN Guide Japan. The MICHELIN inspectors’ point of view, information on prices, types of cuisine and opening hours on the MICHELIN Guide's official website

guide.michelin.com

 

날씨가 좋았던 토요일 주말.

원래 있었던 약속이 무산되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작성했던 -맛집 뿌셔- 리스트에 있던 한 곳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지하철에서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이동을 했더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며 점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면서 가을 느낌이 물씬 도는 산 풍경을 마주 보며 걸어가다 보니, 하얀색 벽으로 이루어진 2층 건물에 도착하게 되었다.

 

쥬고 입구

 

입구 옆쪽에 오도카니 나와있는 담장 위로 가게 이름이 새초롬하게 올라와있던 곳.

점심시간이라 그랬는지 이미 나까지 포함해서 6분이 계셨고, 그 뒤로 두 분이 뒤이어 서 있었다.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셰프의 모습은 마치 성벽을 열고 나오는 선봉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묵직한 기운을 발산하며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세시더니, 바로 내 뒤의 두 분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건네셨다.

좌석이 여섯 개 뿐이라 여섯 명이 한 타임이기 때문에,
두 분께서는 약 한 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오.. 이 짜릿함..

뒤의 두 분께는 죄송했지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15분 정도를 더 기다려서야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간소한 메뉴판

 

가게 문 앞에 조그맣게 놓여있는 메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소바집은 메뉴가 간소해서 선택 장애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소바는 이 집의 가장 주력 메뉴이고 소바가키는 면이 아닌 뭉쳐진 메일 반죽이 쪄서 나오는 것이므로, 모험을 하는 게 아니라면 얌전히 소바를 고르는 것이 좋다.

(사실 뭔지 모르고 소바가키를 시켰다가 셰프께서 사진을 보여주며 면이 아니라고 한 건 안 비밀..)

 

6명의 주문을 받고 나서부터 즉시 면 반죽을 하기 시작하셨다.

주방은 바 테이블 맞은편에 유리로 되어있는 오픈 키친 형식이기 때문에, 직접 반죽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기다림의 끝에 셰프의 손을 떠난 소바는 영롱 그 자체였다.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다.

 

갓 뽑혀 나온 소바면이 소담스럽게 담긴 접시를 받고 나면, 셰프께서 먹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다.

하나. 온전한 면을 느낄 수 있도록 소스 없이 먹기
둘. 종지에 나온 소유에 다진 파와 무를 넣어 찍어먹기
셋. 테이블 위에 따로 올려져 있는 소유를 면 위에 뿌려먹기

 

첫 번째 방법에선 은은한 메밀향과 살짝 단단하지만 입 안에서의 식감이 재미있었고,

두 번째 방법에선 와사비를 내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무 자체에 매운맛이 낭낭해서 따로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방법*이 소유의 감칠맛이 좋아서 제일 입맛에 맞았지만 개인의 취향에 맞춰 모두 체험해보시기를 권장한다.

* 세 번째 소유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다시 한번 여쭤봤는데 규슈산 우스쿠치(うすくち) 소유라고 하셨다.

 

메뉴가 나오고 식사 중간에는 손님에게 식사는 어떤지 어디서 오셨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소바를 삶은 따뜻한 면수를 담아서 건네주시는데, 두 번째 방식이었던 소바를 찍어먹었던 소유로 간을 해서 마시면 좋은 끝맺음이 된다. 

 

이곳 소바의 재료인 메밀은 여러 산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셰프 본인이 직접 재배하는 메밀을 수확해서 만드시는 데다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을 퇴비로 사용하여 메밀 재배에 사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사용하고 있기에 소바에 대한 그의 진정성과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르길 기다림의 미학이라 했던가?

여타 다른 가게들처럼 급하게 먹고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에서 시작하여 소바 면이 나오기까지의 기다림, 손님과의 소소한 대화 그리고 마무리까지.

그 모든 것들이 좋았었던 기분 좋은 한 끼였다.

 

극히 주관적으로 내 인생 TOP 3 안에 드는 소바!

 

※ 드시고 나선 근처에 은각사가 있으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은 여행코스!

 

한 줄 평
박력 있는 셰프(노지심)의 손에서 탄생한 섬세한 소바